최가효 개인전을 열며


2021.06.08


유영공간 디렉터 조유경

요즈음의 풍경이란 단어는 어딘가 멀리 떠나야만 볼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팬더믹 시대 앞에 더욱 그러하다. 나는 실제로 창문 밖의 건물과 주변의 야경, 저 멀리에 보이는 작은 산등성이들을 풍경이라 말하지 않는다. 자연 앞에 나가지 않으며 풍경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나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다 보니, 근래엔 괜찮은 풍경화를 구경한 지도 오래였다.
그러다 공모를 통해 작가 최가효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최가효의 그림을 본 순간, 바로 현실에서 벗어나 낯설고 알 수 없는 미지의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 속의 나를 느끼게 하는 힘을 느꼈다. 이런 게 풍경화였던가.

풍경의 본질은 두 가지라고 했다. 하나는 끊임 없이 변하고 움직인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풍경이 우리의 기억과 무의식, 직관, 세계관을 투사하여 나온 반영물이라는 점이다. 풍경의 무상성無償性을 고정된 한 순간의 장면으로 재현하는 것은 풍경의 본래 모습을 배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풍경은 그 자체로 무상성을 내재하고 또 표현하고 있다. 풍경을 그럴 수 있게 만드는 것은 풍경이, 객관적인 대상이라기보다, 우리의 의식의 반영물이기 때문이다. 풍경은 앞에 놓인, 현전하는 객체라기 보다는 우리 의식의 스크린에 투사된 일종의 시물라크르다. 그렇기 때문에 풍경은 고정되지 않으며 무수하게 반복적으로 차이를 이루며 재생된다. 최가효의 그림은 이 모두가 느껴지며 감상자를 그 풍경 안에 데려다주었으니 좋은 그림이라 말하겠다.

작가 최가효가 만들어낸 세계는 균열과 구멍으로부터 시작되어진다. 최가효의 안온하던 일상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세계의 문을 두드리는 듯한 그림들을 초반작업으로 볼 수 있었다. 이번 [폴짝 뛰어, 동그라미]에선 균열로 태어난 구멍과 문 그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혹은 그 구멍(동그라미)를 넘어갔을 때에 존재하는 광활한 대지와 산맥들, 그 안에서 뛰노는 동물과 새가 존재하는 세계 그리고 그곳으로 나아가는 문과 구멍, 경계 속 인물들과 관계를 보여준다.

가벼운 스케치 위에 탄탄하게 쌓아간 그녀의 풍경 속 색들은 다양하고 화려한 색체를 씀에도 불구하고 차갑지만 광활하고 차분하지만 자유로우며 강하다. 푸르고 깊은 색들을 미묘하게 쌓아 올린 산의 색채들이 특히 그러하다.

작가가 색을 쓰는 방식과 작업의 주제를 결정하는 디테일인 실제 구멍이라거나, 오일 파스텔로 표현한 부분들, 섬세하게 쌓아올린 색들은 그림에 반짝이는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 과감한 화면 구성들로 인해 어떻게 보면 평면적인듯한 그림 세계 속에 깊이감을 만들며, 이상하게도 광활한 어떤 풍경 앞에 서 있는 듯한 감상을 일으킨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가 되어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규정 지을 수 없는 대자연을 목도한 것 같은 감정의 일렁임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그림의 작업적 발전과 이어나감 속에 어떤 신화적인 서사를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붉은 대지와 산, 짙고 어두운 하늘과 물의 풍경들, 어디론가 드넓게 인도하는 대지와 길들, 그 곳에 태어난 구멍 (차원의 문)을 통해 타고 올라오는 ‘현재'와 ‘현세'를 벗어나 자유로운 세계에 당도한 인간들의 모습이 마치 어떤 세계의 창조를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도착한 최가효의 풍경 속에는 또 다른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차원의 동그라미들과 그 안팎에 우리가 고대하던 자유의 세계들이 존재한다. 우리를 떠나게 한다. 우린 그림 안을 헤매다 구멍을 통해 또 다른 자유세계를 향해 도망쳐야 할 것 같은 어떤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우린 곧 동그라미 속으로 사라진다. 두 발을 띄어 어떠한 모든 우리의 풍경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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