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2023


최가효

나는 회화적 판타지 아래 자유롭고 선명한 색감의 ‘너머의 세계’를 그린다. 단순하고 평면적인 도상에 감각적인 색채를 입히면 너머의 풍경이 된다. 휘발되는 지구의 풍경, 아름다운 사람과 동식물의 순간을 온라인이나 주변에서 수집하고 그 윤곽을 종이나 캔버스에 옮긴다. 가끔은 우연과 즉흥에 손을 맡기면서 새로운 풍경과 구상을 창조하기도 한다. 파스텔, 색연필, 콘테 등의 드로잉 재료로 원시적 자연의 불확실성과 유연함을, 불투명 수채나 유채로 식물의 폭발적 모양과 자연의 어지럽고 투박한 색을 표현한다. 붓을 거침없이 문지르되, 서로 다른 색상을 얇게 여러 번 채색하여 투명하고 선명하지만 동시에 불안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래서 그곳의 풍경은 지구의 것과 닮았지만 좀 더 자유롭고 산뜻하다.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 춤을 춘다. 가장 가벼운 몸으로. 풀도 춤을 추고 나무도 춤을 춘다. 다정하고 친절한 인사, 가벼운 댄스가 있기에 눈치 보다가 위축되는 사람은 없다. 마음껏 울고 힘껏 사랑하는 원시의 몸짓들과 행동할 용기, 그리고 멈출 여유도 있다. 현실에서 내가 놓친 것들이, 선망하던 것들이 그곳엔 있다. 자유롭고 가볍고 투명한 세계로, 죽음 이후가 아니라 지금 내 눈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 너머, 지금 이 시간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그린다.

나는 가벼워지고 싶다. 회화는 무용이나 음악, 공연과 달리 물질성이 있는 예술이니 말에 어폐가 있는 것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겐 그림이 남는다는 사실, 남기 때문에 계속해서 보여지고 거래할 수 있다는 사실보다도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자체가 중요하다. 선을 긋거나 색을 칠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발목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던 것들을 끊어내고 나를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게 한다. 발 붙인 땅에 원하고 기대하는 모든 것들을 납작한 지지체에 옮길 수록 묵직하게 짓누르던 몸의 무게는 줄어든다. 돌연 나타난 구멍 안으로 모든 걸 두고 훌쩍 떠나게 한다. 시간이 제거된 가상의 풍경으로 홀연히 이주하게 한다. 그렇게 소비주의, 자본주의가 지배한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고 타인이나 외부적 기준에 맞춘 ‘나’가 되기 위해 애쓰는 상태로부터 멀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을 남길수록 나는 가벼워진다.

그리고 나는 곧 떠날 유랑객의 마음으로 내가 이렇게 좋은 곳으로 가노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림을 남긴다. 유서처럼 그림이 남는다. 그림은 남아서, 상처와 좌절을 다른 색으로 덮으며 무릎에 힘 꽉 주고 끝까지 사랑을 말할 힘이 되어준다. 발 붙인 삶에 대한 믿음을 넓혀주고 너머의 세계로 달려들 용기를 끌어모으는 또 하나의 입구가 되어준다. 너머의 세계가 나를 위로한 것처럼 담담하게 현실을 살아내는 모두를 감싸안는 풍경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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