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의 존재


2019


최가효

나의 그림은 아주 작은 방안의 G로부터 시작한다. 작은 방 안에 나이자 너이자 우리인 G가 있다. G는 정육면체 안에 진공으로 둥둥 떠서 바닥이기도 벽이기도 천장이기도 한 여섯개의 사각형을 마주하고 있다. 사각형의 면은 G가 살면서 보고 배운 것들로 빼곡하게 꾸며져 있고,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는 기분을 달래기 위한 작은 화초도 있고, 언젠가 필요할 지도 모르는 물건들을 버티고 있고,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더러움도 바짝 달라 붙어 있다. 이 방은 G가 영위하는 전체 세계다. G는 대체로 이 세계 안에서만 생각하고, 어쩔 때는 이 세계가 다인 것처럼 느끼며, 딱 방의 사이즈 만큼만 기억하거나 예측하며, 방 안에서만 이동하거나 애쓴다. 그렇게 평생을 산다. 가끔 G는 자신의 세계가 너무 작고 답답하며 쉽게 가로막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눈 앞의 벽을 있는 힘껏 밀어서 작은 방을 조금씩 늘려본다. 왠지 늘어나는 것도 같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큰 에너지가 드는 일이기 때문에 G는 이것말고도 할 일이 꽤 많으니까, 하고 아픈 팔을 주무르고 만다.


어느 날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풍경과 공기의 흐름과 향과 촉감과 색채가 G를 둘러싼다. G는 방 안에 있지 않다. 아니 사실 방인데, 방이라고 느낄 수 없을 만큼 광대한 공간이다. G는 숨이 턱 밑에 차오를 때까지 달릴 수 있다. 아무리 달려도 벽이 손에 닿지 않기 때문에. G는 이곳에서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느낀다. 이 방 모든 곳을 다 구경하기에 주어진 삶이 모자를 것처럼 느낀다. 최초로 G가 해야할 일은, 먹고 자고 싸고 먹고자고싸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고 구입하기 위해 벌고 벌기위해 꾸며내고 꾸며내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고 등등의 일들과는 달리, 주변을 보는 것이었다. 미처 G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움과 광활함과 신비로움을 그냥 보고 만지고 맡고 듣고 느끼는 일이었다. G는 환희 속에서 눈을 뜬다.


눈을 떴다. G는 꿈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 있던 그 자리, G의 세계. 벽은 너무나 견고하고 발은 보이지 않는 끈에 묶여 있었다. G는 여느 때처럼 달렸는데 꿈에서처럼 달린 것은 아니었다. 사방에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는 것들만 보였고 그 이상은 기대할 수 없었다. G는 벽에 손을 대보았다. 이 너머에 뭔가 다른 곳이 있다. 더 나은 곳, 환상의 세계. G의 세계와 대칭이고 평행인 세계. 비슷하지만 더 아름답고 다채롭고 강력한 세계. 그 이상이 있는 세계.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세계. G는 벽을 두드린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있는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천천히 빠르게 약하게 강하게 두드린다. 작은 금이 가고 균열이 갈 때까지 두드린다. 언젠가 벽에 작은 틈이 난다. 그 사이로 벽 너머의 세계를 본다. 어쩌면 그 작은 틈은 점차 넓어져 창이 되고 문이 된다. 벽 너머의 세계는 그림처럼 창문처럼 벽에 걸릴 수도 있다. G는 액자 안으로, 창문 밖으로 손을 뻗는다. 용기내 한 걸음 발을 딛는다. 그 순간 G는 벽 너머의 자유세계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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